안 독하게 합격하는 방법(평범한 수험생이 평범하게 합격하는 방법)
공시생들이라면 한번쯤 다 봤을 것 같은 책이 있다. 전효진 선생님이 쓰신 『독하게 합격하는 방법(2013)』이다.
(공시생이라면 행정법을 공부하지 않는 사람도 모두 다 아는) 유명한 스타강사가 사법고시를 단기간에 합격한 비법(?)과 공부에 대한 마음가짐에 대해 쓴 책이다.
책에는 주옥같이 좋은 말씀들이 많지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수험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독하게 공부해야 합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근데 그 독한 정도가 우리 같은 일반인들이 감히 흉내 내기도 어려울 정도로 독한 수준의 수험 강도를 말한다. 하루에 14시간 이상 공부하고 정말 잠자는 시간 말고 모든 시간은 공부에 전념한다.
나는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사법고시와 공무원 시험은 기본적으로 난도가 다른 시험이기 때문에 하루에 14시간 15시간씩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나도 지금까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쳐오며 꾸준히 공부를 성실하게 해 왔고, 공부에 대한 태도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14시간씩 책상에 앉지 않고도, 저렇게 처절하게 하지 않아도 공무원 시험 ‘쯤’은 합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공무원이 얼마나 대단한 직업이라고 저렇게 까지 열심히 해서 합격해야 하나 싶었다. 저렇게까지 독하게 공부하지 않고는 합격할 수 없다면 이 나라가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서울대 경영학과에 사법고시 출신이라면 솔직히 일반인의 범주, 특히 공무원 수험생의 범주는 한참 지났다고 생각했다. 평범한 머리를 가진 공시생들에겐 해당되지 않는 무용담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어렸을 때 인상 깊게 읽었던 책 중에 『공부 9단 오기 10단(2004)』이라는 책이 있었다.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조기졸업하고 하버드 등 미국의 10개 명문대학에 합격한 사람이 쓴 책이다. 읽어보면 죽도록 노력했다는 이야기밖에 기억에 나지 않을 정도로 정말 저자는 죽도록 열심히 노력했다.
그런데 나는 죽도록 노력했다는 이야기(오기 10단)에 집중하지 않았다. 나는 공부 열심히 하면 누구나 잘 합격할수 있다는 말 자체를 혐오한다. 정말 극혐이다. 솔직히 공부는 머리빨이다.
미셀 푸코는 지식은 권력의 산물이라고 했다. 감히 철학에 문외한인 내가 푸코를 말하기 부끄럽지만, 권력을 가진 계층이 자신들의 권력을 자손 대대로 물려주기 위해서 시험이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고시에 합격한 사람들은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누릴 수 있게 보장했다. 어차피 공부머리도 유전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자식은 대대손손 공부를 잘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권력을 가진 사람도 언제든지 전쟁(싸움)이라는 방법을 통해 권력을 잃을 수 있었다. 권력을 지키는 방법이 점점 발달하고 근대화 된 것이다.
아무튼, 기본적으로 타고난 머리가 좋은 사람이 공부를 잘 할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공부가 9단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래 모든 사람이 가진 재능은 다 다르다. 누구는 달리기를 잘하고 누구는 수학을 잘하고 누구는 손재주가 있어서 만드는 것을 잘하고 누구는 언변이 뛰어나다. 공부라는 것은 기본적인 머리가 되어야 한다. 타고나야한다.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안다. 하나를 배워도 열을 아는 사람들은 공부가 재미있다. 재미있으니까 더욱 더 열심히 하게 된다. 공부가 9단은 되어야 오기 10단으로 저자와 같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냥 오기 10단만 가지고는 안 된다.
나는 공무원 수험을 시작하면서부터 평범한 수험생이 평범하게 공부해서 평범하게 합격하는 이야기에 대한 책을 쓰고 싶었다.
서울대를 나오지 않고 14시간씩 공부하지 않아도 합격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굳이 온갖 스트레스를 다 받으면서 14시간씩 책상에 앉아있어야 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마치 14시간 공부하는 것에 실패한날엔 수험이 망한 것 같은 패배감에 젖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싶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수험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같이 공부하던 친구 앞에서 다짐했었다. 내가 꼭 합격해서 『평범하게 합격하는 방법』을 책으로 내겠다고.
하지만 수험생활을 1년 정도 한 뒤로는 생각이 많이 바뀌긴 했다. 합격하려면 독하게 공부하는 것이 좋긴 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기본적으로 공부를 대하는 태도는 독하게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사람마다 하루에 담을 수 있는 공부의 그릇이 다르기 때문에 남들과 너무 비교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시험에 합격하고 연수원에서 여러 합격한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면 하루에 14시간 공부한다고 합격하는 것도 아니고 6시간 한다고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사람마다 기본 베이스도 천차만별이고 하드웨어 속도(머리)도 다르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가 찢어진다고 본인 상황에 맞게 공부했으면 한다.
다만 자신이 다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열과 성을 공부에 쏟아야 하는 것은 맞다. 진지한 태도로 임하되 남과 너무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불합격한 사람에게 주변에서 손가락질 하는 것도 싫다.
안 좋게 보는 시선도 싫다.
불합격한 사람이 패배자라는 감정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100명중에 단 1명만 합격할 수 있는 시험이다. 몇 달 공부해보고 적성에 안 맞아서 노량진을 떠난 친구를 안 좋게 보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 어려운 시험이다. 어떻게 보면 붙는 사람이 비정상적인 시험이다. 굳이 합격하지 않아도 공무원만큼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많다.
나의 인생이란 그릇을 굳이 공부로만 모두 채워 담지 않아도 된다.
굳이 시험에 합격하지 않아도 된다.
먹고살 길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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