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risky)한 행동이라는 주장의 글을 보았습니다.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장의 요지
합격하지 못하면 단순히 공무원이 되지 못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한 기간만큼 인생에 블랙홀이 생기기 때문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 근거로,
① 공부한 기간 자체가 마이너스 스펙이기 때문에 사기업 면접에 매우 불리하며(특히 3년 차 이상)
② 공부 중 나이가 30이 넘어가면 사기업에 신입으로 들어가기 어려워지고
③ 자존감은 낮아지며 대인관계를 기피하게 되어 친한 친구들이랑 만나는 것조차 꺼리게 되는 성격장애가 오게 되며
④ 2~3년은 순식간에 지나가기 때문에 눈 깜짝할 새에 장수생이 되며
⑤ 공무원 시험 과목은 깊이도 없고 쓸모가 없기 때문에 다른 자격시험(회계사, 노무사 등)과 달리 공부 그 자체로 남는 것이 없다
때문에 장수생이 되면 합격하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공부 말고는 할 게 없으니까 공부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런 정신상태에 빠지면 '합격'이 목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탈출'이 목표가 되며 이런 사람들은 '합격'이 목표인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합니다.
또한 글쓴이는 낮은 공직 만족도에 대해서도 이야기 합니다.
공직자의 삶을 중소기업 수준의 돈을 받으며 야근도 많고 오로지 정년과 쥐꼬리만한 명예가 보장되는 삶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다음 세 가지 결론을 제시합니다.
① 공무원 시험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매우 높은 확률로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것이라는 각오가 선행될 것
② 수험생의 상당수는 배수의 진을 치고 들어온 사람이기 때문에 당신은 전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고 공부를 시작할 것
③ 임용되고 나서도 누구에게 자랑할 것 없는 평범한 인생을 살게 될 것
이제부터 이 글에 대한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글은 공무원 시험 몇 달 준비하다가 합격하지 못하고 낙오된, 아직 대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사회 경험 없는 사람이 쓴 글 같아 보입니다.
일부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렇게 치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세상 일이라는 게 그렇게 만만하지 않으며 위 글의 글쓴이가 주장하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 얻어낼 수 있는 직업(job)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기업 취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첫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기간은 인생의 블랙홀이 절대 아닙니다.
우선 사기업에 취직을 준비하는 것도 그렇고 개인 사업을 준비하는 것도 그렇고 성공하지 못하면 그 준비한 기간만큼 블랙홀이 생깁니다. 사실 블랙홀이라는 주장 자체도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인생이라는 것은 원래 새옹지마이며 굴곡이 있기 마련이고 좋을 때가 있으면 나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우리 인생에서, 내리막 구간을 모두 블랙홀(낭비)로 치부한다면 우리 인생에서 값진 시기는 많이 없을 것입니다. 오랜 기간 공부한 경험(혹은 사기업 취직을 위해 노력한 경험, 사업을 하기 위해 노력한 경험) 등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결국 보이지 않는 도움이 될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 연설을 들어보면, 인생은 점들을 이어가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대학을 다니던 시절 단순히 호기심에 의해 듣기로 결정한 글씨체 수업이 10년 뒤에 아름다운 글씨체를 제공하는 매킨토시 컴퓨터를 만드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지금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공부한 경험이 10년, 20년 뒤에 어떤 유익한 형태의 결과물로 우리 인생에 돌아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둘째, 자존감이 낮아지고 대인기피증이 생기는 것은 공무원 시험 준비 때문만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인생에서 노력(다른 말로 투자 또는 희생) 없이 무언가를 성취할 수 없습니다.
제가 수험 공부를 하던 시절, 어떤 유명한 연예기획사 대표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납니다.
"인생에서 죽기 살기로 하지 않고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보기에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결과물이라도 그 결과물을 일궈낸 사람은 죽기 살기로 했을 것입니다. 원래 남들이 하는 것은 쉬워 보입니다. 남들은 쉽게 이뤄낸 것 같이 보입니다. 하지만 막상 직접 자기 손으로 해보려고 하면 남들이 한 것처럼 할 수 없습니다.
보는 것은 쉽고 말하는 것은 쉽습니다. 직접 행동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것은 어렵고, 사기업 취업 준비하는 것은 과연 쉬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공무원 시험 준비뿐만이 아니라 그 다른 어떤 일도 성취하려면 일정 기간 이상 몰입해서 인생을 갈아 넣어야 하는데 그 갈아 넣는 과정에서 자존감이 낮아지고 대인기피증이 생기는 문제는 누구나 경험하게 됩니다. 사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오랜 기간 취준생 시절을 겪은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셋째, 공무원 시험 과목은 깊이가 없기 때문에 쓸모도 없고 남는 게 없다는 말엔 더욱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주변에 보면 회계사를 준비하다가 포기하고 취업한 친구나 노무사를 준비하다가 포기한 친구나 딱히 그 전문지식을 살려서 밥벌이를 하는 것을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동일한 분야나 유사한 분야로 진로를 결정하고 취업을 하는 사람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회계사나 노무사 공부를 했기 '때문에' 회계 파트나 노무 파트에 취업을 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설령 회계나 노동법을 공부했기 때문에 회계나 노무 담당자로 취업했다고 하더라도, 취업 과정에서 그 공부 경력이 상당히 많이 반영된 것은 아닙니다. (회사마다 다르긴 하니까 제가 함부로 말할 수는 없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공무원 수험 과목도 다른 자격시험 과목 못지않게 전문적인 부분을 다룹니다. 특히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다 보면 법 과목에 대해 일정 수준 이상의 인사이트를 얻어 갈 수 있습니다.
참고로, 공부라는 것은 어차피 계속하지 않고 관련 지식을 계속 써먹지 않으면 까먹게 됩니다. 아무리 회계학과 노동법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해도 평생 그 분야를 다루거나 공부하지 않으면 다 잊어버리게 됩니다.
넷째, '탈출'이 목표인 사람도 '합격'이 목표인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탈출'이 목표인 사람은 '합격'이 목표인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은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동기부여 측면에서 이야기하려고 했던 취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동기부여가 '탈출'에서 올지 '합격'에서 올지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오히려 저의 경우엔 합격 한 뒤의 짜릿한 과실(공직 생활에 대한 만족감)을 상상하며 공부하기보다 탈락했을 때의 실패감을 피하기 위해서 공부했던 것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탈락'과 '합격'을 운운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시험은 그냥 공부 잘하는 사람이 합격하는 것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다섯째, 낮은 공직 만족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동의는 하지만 쉽게 이야기할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급여, 업무강도, 복지, 명예(reputation), 안정성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봤을 때 "공무원이 좋다" 혹은 "사기업이 좋다" 혹은 "자영업이 좋다" 쉽게 결론 내릴 수 없습니다. 인생을 대하는 태도와 가치관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에겐 쥐꼬리만한 월급이지만 안정적인 직장이 가치 있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중소기업도 들어가기 힘든 직장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중소기업이 오히려 더 좋은 직장일 수도 있습니다. 사기업도 사기업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모든 사람이 삼성, 현대, SK, LG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논리적이지는 않지만 조금 자극적으로 이야기해보자면) 공무원 시험에도 합격하지 못하는 사람이 과연 공무원보다 더 좋은 다른 직장에 합격할 수 있을까요?
여섯째, 당신은 전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은 어느 분야에서나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재능이 각자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재능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분야에 뛰어드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특별하지 않은 사람으로 폄훼한다면 그 폄훼당한 사람들이 다른 분야에서는 성공할 것이라는 근거까지 같이 제시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일곱째, 다른 사람의 인생을 누군가에게 자랑할 것 없는 평범한 인생이라고 주장하는 글쓴이의 인생이야말로 지극히 평범해 보이고 누군가에게 자랑할 것 없을 것 같습니다.
평범이라는 단어의 정의 자체가 그렇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기 때문에 평범한 것입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못나거나 바보라서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세상에는 비범하고 특출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꼭 그런 사람들의 인생만 성공스러운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더 이야기하자면 철학적인 이야기를 길게 해야 할 것 같으므로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제 나름의 결론을 내면서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남들 말에 휩쓸리지 말고 본인 인생의 가치관을 잘 돌아본 뒤 공무원 수험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면, 공부하시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힘내시기 바랍니다. 저는 오히려 도전하지 않는 것이 위험(risky)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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